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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10 Outrageous Things You May Have Heard About Vaccines (by UNICEF Buzzfeed)


요즘 안아키나 안예모 등의 안티백신운동에 의해 백신에 대한 이상한 속설들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유니세프에서 알려주는 백신에 대한 오개념과 진실을 정리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1. 백신은 멀리 여행갈 때만 맞히면 된다 (X)

본인이 여행 갈때만 생각하지 말고 누군가 특정 질병이 창궐하는 지역에 여행 다녀왔을때 병을 옮겨올 경우 엄청 빨리 그 병이 퍼지는걸 생각해 보라. 더욱이, 모든 사람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임산부나 백신성분에 알러지가 심한 사람, 면역결핍증인 사람 등의 경우는 백신을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질병의 확산을 억제하여 그 전염병과 접촉할 확률 자체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미국 뉴욕과 영국에서 홍역,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백일해가 돌림병으로 일파만파 퍼졌던 사실을 상기할것.


2. 백신 접종 여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X)

말하자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기침할때 입을 가리거나 이웃집에 불났을때 구급차 부르는거랑 같다고 생각하는듯? 기본적으로, 우리는 커다란 지구촌에서 병원균을 공유하며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들이 예방접종으로 면역력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그 지역사회는 심각한 전염병이 퍼질 위험을 높이게 된다.


3. 백신에는 독성이 존재한다.전혀 그렇지 않다. (X)

백신은 사실 매우 안전하며, 매년 수백만명 이상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만약 백신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인체에 해로울 만큼 들어 있다면, 공중보건기구에서 이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의사들은 이를 맞히지 않을 것이며, 제약회사에서는 이를 판매하지 않을 것이다.


4. 백신은 비자연적이다. (X)

백신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리지 않으니깐 비자연적이라고 보는건가? 그 “자연적”인 것이 뭔지 아는가? 천연두, 소아마비, 흑사병 등의 예가 있다.


5. 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부모)가 제일 잘 안다. (X)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백신이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숙지해야 한다.


6. 백신을 지원하는 단체들은 제약회사의 조종을 받고 있다. (X)

이런 힙스터같은 인신공격은 공중보건을 지지하는 이들을 증거 없이 방어적으로 만드는 영리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들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것보다 이미 걸린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훨씬 돈을 더 많이 벌지 않던가?)


7. 백신은 자폐증을 유발한다. (X)

Hell NO!! 절대 아니다. 1만 2천 건 이상의 피어리뷰를 통과한 연구논문을 포함해서 엄청 많은 연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8. 백신은 난임이나 불임을 유발한다. (X)

미신이다.이런 미신이 위험한 이유는,예방백신으로 쉽게 막을 수 있는 질병 창궐 및 그로 인한 죽음을 막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연구에 의하면 백신이 임신 가능 여부에 전혀 영향을 끼친 바 없다는 것이 입증되어 왔다.


9. 나는 안티백신이 아니라 “안전한 백신"을 지지할 뿐이다. (X)

지금의 형태로서의 백신은 이미 충분히 안전하다. 사실은 그 이상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전한 백신"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이율배반이다.


10. 백신 맞은 사람들도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백신은 무의미하다. (X)

대박 무식한 소리다. 백퍼센트 효과적이지 못하면 전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나보네. 그 어떤 백신도 질병을 100% 막아주지는 못한다. 왜냐면 5-10% 정도의 사람들은 아예 그 백신을 맞는다 해도 면역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인구 중 더 많은 이들이 백신으로써 면역력을 가질 경우 그런 사람들이 질병에 걸릴 확률을 더 낮출 수 있다.


유니세프는 UN 산하의 어린이 기금으로, 질병으로부터 전 세계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백신 보급 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하여 과학 커뮤니케이션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중 한 에피소드의 코너를 공유하고자 한다. 영상의 대략 15분 무렵부터 안티백신운동의 해로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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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성진 중기벤처부 장관 후보자의 창조과학회 이사 역임 이력 때문에 과학계가 시끌시끌했다. 관련하여 기독교 언론(기독일보)의 과학 섹션을 찾아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년도 더 이전에 과학적으로 반증 끝난걸 창조과학회가 아직도 반증되지 않았다고 우기는 글을 당당하게 2017년 7월 기사로 올리고 있다. 그것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조차 없고 선언적 말장난뿐인 블로그 또는 페이스북 포스팅 등을 퍼다가 명색이 언론사라는 곳에서 정식 기사로 내고 있다. 


예를 들면, 소위 "과학" 기사라고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1%만 다르다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는데(...), 기사 원문의 다음 인용문을 (꾹 참고서) 읽어보기 바란다. 

(인용시작)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이고 침팬지의 염색체는 24쌍이다 
혹자는 인간의 2번 염색체와 침팬지의 12번,13번 염색체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공통조상의 12,13번 염색체가 2번으로 합쳐졌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합쳐진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가 결합을 했다는 증거라는데 오히려 텔로미어의 역할은 마치 골무처럼 결합을 방지하는 것이다 
모든 염색체에는 한개의 센트로미어를 가지고 있는데 두 개의 염색체가 결합되었다면 텔로미어가 2개이고 센트로미어도 2개가 있다 
문제는 2개의 텔로미어와 2개의 센트로미어는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퇴화되었다고 주장하며 비활성화된 것을 찾아보지만 이것도 발견하기 어렵다" 

(인용끝)  

소위 dicentric chromosome 이라고 하는, 염색체 접합의 흔적이 있는 염색체가 생기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알려주는 경우 말고도 식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배양된 인간 세포주에서도 발생한다. 이 경우 세포분열시의 안정성을 위해 한쪽 centromere는 후성유전 또는 deletion에 의해 불활성화된다. 이걸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은 2005년 지적설계론 관련 '키츠밀러 vs 도버 교육청 재판'에서 명백하게 반증되어 폐기된 주장인데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걸 아직도 들고 나오고 있다.  (12년 묵은걸 아직도 새것인양... 정말 뭘 모르는게 아니라면 거짓말로 사기치는 거라고밖에...)

 게다가 게놈의 염기서열 "숫자가 다르다"는걸 핑계로 유전자 염기서열이 훨씬 많은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microsatellite 또는 genetic duplication 등의 반복서열이나 유전자 중복 등의 많은 요소들을 일단 개무시한 다음 원하는 주장을 우기기 위해 말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 

1) Origin of human chromosome 2: an ancestral telomere-telomere fusion. [http://www.pnas.org/content/88/20/9051.short] (1991년 PNAS 논문) 

2) Generation and annotation of the DNA sequences of human chromosomes 2 and 4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34/n7034/abs/nature03466.html] (2005년 Nature 논문. 2번 염색체의 게놈상의 접합 위치와 두 번째의 센트로미어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 중) "Chromosome 2 is unique to the human lineage of evolution, having emerged as a result of head-to-head fusion of two acrocentric chromosomes that remained separate in other primates. The precise fusion site has been located in 2q13–2q14.1 (ref. 2; hg16:114455823–114455838), where our analysis confirmed the presence of multiple subtelomeric duplications to chromosomes 1, 5, 8, 9, 10, 12, 19, 21 and 22 (Fig. 3; Supplementary Fig. 3a, region A). During the formation of human chromosome 2, one of the two centromeres became inactivated (2q21, which corresponds to the centromere from chimp chromosome 13) and the centromeric structure quickly deterioriated42. A search of genome sequence for the presence of vestigial centromere and pericentromeric sequences identified a 2.6-Mb region in 2q21.1–2q21.2 that is enriched for pericentromeric duplications to chromosomes 1, 7, 9, 10, 13, 14, 15, 18, 21 and 22 as well as a variety of centromeric satellite repeat sequence motifs (HSAT5, GSATII, ACRO1). The degree of sequence identity of the interchromosomal duplications (< 98%) suggests that these pericentromeric segmental duplications existed before the formation of this chromosome. Within this 2.6-Mb interval, we identified a relatively large tract of satellite sequence (three tracts totalling 31,198 bp of alpha-satellite sequence over 36,696 bp), which likely demarcates the position of the ancestral centromere (Supplementary Fig. 3a, region B). These data raise the possibility that ancestral telomeres and ancestral centromeres that have disappeared over the course of mammalian chromosomal evolution might be marked by the presence of an abundance of residual pericentromeric and subtelomeric duplications." 

3) Centromere Destiny in Dicentric Chromosomes: New Insights from the Evolution of Human Chromosome 2 Ancestral Centromeric Region. [https://www.ncbi.nlm.nih.gov/pubmed/2833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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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에 잠시 한국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사온 책 중 한 권이다. 과학철학 입문서를 표방하는 책인데, 내용 자체도 지나치게 어렵지 않고 깔끔한 편이다. 저자의 블랙 유머가 중간중간 가미되는 편인데, 너무 대충 읽으면 본뜻을 정 반대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으니(...) 읽으면서 그 점에만 유의하면 될 것이다. 다음 내용은 책 본문 중 '지적 설계론'에 관한 언급을 한 내용이 있어 공유하고자 옮겨 보았다. 요약하자면, 역시나 지적설계론은 증거 없이 추론만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게으른 논증에 불과하다는 얘기.




진화 생물학 교과서에는 자세한 수학적 원리가 바탕이 된 방대한 체계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진화 원인의 영향 아래서 개체군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유전 변형이 일어나는 과정과 종 내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 및 환경과 상호교류하는 방식에 대한 풍부한 실험적 자료가 이 체계를 보완 설명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종 분화", 즉 신생 종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과 함께 종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술한다. 이런 책에서는 자연선택이 야생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진화 과정이 지닌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한 논쟁들도 접할 수 있는데 이는 꼼꼼한 실험에 근거한 것이다.


윌리엄 뎀스키와 마이클 비히가 지지하는 지적설계이론은 과학 이론을 자처하는데, 이 이론은 최소한 몇 가지 경우에 생물체가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지적 설계 관점에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마이클 비히는 편모(요동 모터처럼 생물체에 붙어 빙글빙글 도는 채찍 모양의 가는 실로, 어떤 종류의 박테리아는 이 편모로 인해 액체 배지에서 잘 돌아다닌다)가 자연선택 때문에 출현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것이 지성을 가진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것이 비히의 주장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은 편모 같은 데서 드러나는 유기체의 적응이 특히 기독교의 신과 같은 특정 신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말을 피해 왔다. 이들은 보통 이 지적인 존재의 본성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는 대신 우주를 돌보는 어떤 지적인 존재가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적설계이론은 어떻게 자연선택론을 반박하는가? "다윈의 블랙박스"라는 자신의 책에서 비히는 박테리아 편모가 많은 다른 특징과 더불어 그가 말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편모의 일부가 제거되거나 변형되면 편모의 운동 자체에 부분 장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의 생존과 번식에 무용한 신체 기관이 된다. 편모의 전반적인 운동이 너무나 정교하게 짜여 있으므로 일부분이라도 장애가 생기면 제대로 된 생물학적 기능을 하는데 엄청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비히에 의하면, 자연선택론자들은 처음에 단순했던 특징들이 자연선택 과정을 거쳐 복잡한 특징으로 바뀐다고 여긴다. 그런데 일부가 제거되거나 변형되었을 때 전반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생물 기관이 존재한다면, 다시 말해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한" 기관을 실제로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기관이 점진적인 발전 때문에 생긴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비히의 주장이다. 즉, 비히는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한 기관의 존재가 자연선택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리게 된다.


비히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편모가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일부만 남은 편모가 회전 운동은 하지 않지만, 단백질 독소를 다른 세포에 전달해준다는 면에서 여전히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와 편모가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자연 선택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비히의 입장은 틀렸다. 그는 오랜 시간 점진적인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등장한 생물체의 기관이 처음에는 엉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기관의 경우 일부가 제거되거나 변형되는 일이 자주 있어도 전반적인 기능에는 거의 지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자연선택을 통해 전반적인 효율성을 위해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부분들이 점진적으로 제거되어 나가다가 더 제거되거나 변형될 경우 기능 자체가 안되는 시점에 이르면 마침내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한" 기관이 나타나는데, 이때 점진적인 과정을 통한 이 기관의 출현을 자연선택 이론은 충분히 설명해낼 수 있다. 물론, 비히 입장에서는 편모가 실제로 이렇게 출현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비판을 할 수 있다. 단순한 시작에서 점진적으로 세련되어진다는 가정이 전적으로 추측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의 지적설계이론이 편모의 존재를 자연선택론이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인데, 그런 무리한 반대 주장은 사실 허구 상황을 통해 대략 설명하는 것으로 아주 쉽게 반박이 된다.


좀 양보해서 자연선택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물학적 기관이 있다는 비히의 주장이 바르다고 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비히는 그것을 규명해내지 못하고 다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지적설계이론이 편모의 존재를 설명해 준다는 입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적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떻게 편모의 특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명확하게 하기는 힘들다. 내가 독자 여러분에게 "화성에 지능적인 설계자들이 산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이 경우 내가 독자 여러분에게 이 설계자들이 얼마나 지능이 뛰어난지, 몸집은 얼마나 큰지, 얼마나 게으른 존재인지, 얼마나 협조적인 존재인지, 어떤 경제적 급선무를 지녔는지, 또 어떤 자원을 이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주기 전까지는 이 존재가 어떤 것을 설계할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지적설계이론이 박테리아의 편모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수 있으려면 그 지적 설계자가 지녀야 할 기구와 능력, 설계의 개요, 계획을 시행하고 개선하는 방식, 그리고 쓸 수 있는 자재물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유기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등장하는지 진화론자들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것과 대조적으로 지적설계론자들은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학자들은 진화 과정에 대해 추정만 하고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유전 변형률과 자연선택론의 강점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가정을 세운 뒤 추정한 내용을 직접 실험해본다. 이와 달리 지적설계론자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설계자가 어떤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가정을 실험대에 올리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차이로 인해 유기체 세계의 변화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 강력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반면, 지적설계이론은 그 빈약한 증거 자료로 인해 헛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어떤 면에서 지적설계이론은 진화 생물학에 상반되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지적설계론자와 진화생물학자는 편모와 같은 기관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지적설계이론이 "위협적인" 경쟁이론이 되려면, 다시 말해 강력한 증거 자료를 갖춘 이론이 되려면, 진화 생물학처럼 종분화와 생물체의 적응에 대해 철저한 실험에서 나온 자료가 바탕이 된 강력한 이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적설계론자들이 과학자라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설계 과정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교과서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 설계 과정이 외부 요인에 의해 위협받고도 또 언제 외부 요인을 극복하는가?" "이 이론에서 제시하는 지능적인 설계자의 본성은 무엇이며 그 설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는가?" "상충하는 설계명세서를 접했을 때 설계자는 보통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설계론자들이 해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우리의 기대는 채워지지 않는다. 대신에 설계론자들은 우리 손에 생물체 세계의 목록, 그것도 엄청나게 긴 목록을 쥐어주면서, 생물체 체계가 자연선택론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말만 할 뿐이다. 이런 태도를 지닌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 팀 르윈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2장: 그런 것도 과학인가 中 '증거와 지적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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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 링크(54분부터)


와우(WOW;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나는 게임을 안해서 이름만 들어봤는데, 와우 초창기에 새로 생긴 '줄구룹' 던전의 보스 캐릭터 '혈신 학카르'가 사용하는 감염성 저주(오염된 피)가 마치 실제 현실에서의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던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과학 하고 앉아있네'에서 다루고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워낙 흥미로운 현상인지라 다수의 역학(epidemiology) 연구자들이 분석하여 논문으로 내기도 하였다.


[전염병의 사회적 영향]


1. 메르스(MERS)


- 무능한 정권의 조기 종말


-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미러링 형태의 페미니즘 운동



2. ‘오염된 피’ 전염병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와우)에서 발생했던 사이버 전염병


- 세계적인 의학저널 Lancet의 자매지(Lancet Infectious Diseases)나 Epidemiology 저널 등에서 버추얼 게임 세상에서의 질병역학 및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실제 사회에서의 것과 매우 유사하게 나타남을 주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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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에서의 사회 현상]


1. 리니지2: “바츠 해방전쟁”


- 독재에 의한 폭정, 그에 저항한 민란, 쿠데타, 권력 추구, 이합집산 등을 관찰할 수 있었던 사건



2. 소셜 네트워크


-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사회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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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Balicer RD (2007). Modeling infectious diseases dissemination through online role-playing games. Epidemiology 18(2):260-1. (https://www.ncbi.nlm.nih.gov/pubmed/17301707)


Lofgren ET &amp; Fefferman NH (2007). The untapped potential of virtual game worlds to shed light on real world epidemics. Lancet Infect Dis. 7(9):625-9. (https://www.ncbi.nlm.nih.gov/pubmed/1771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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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사진을 볼 때와 도구를 사용할 때 남성의 뇌 활성 부위는 동일하다고 한다.

뉴스원문: http://www.cnn.com/2009/HEALTH/02/19/women.bikinis.objects/

2009년에 AAAS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의 수전 피스크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비키니 입은 (예쁜) 여자의 사진을 보면 '도구'를 다루고 '행동'을 취하는 데 관여하는 뇌내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소위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러한 남성의 반응은 개인이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부산물이다. 말하자면 수컷이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수태가 가능한 암컷을 찾는 기능이라는 것.

따라서 남자들은 여성을 대할 때 이러한 "진화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험 대상인 프린스턴의 이성애 남학생들에 대하여 성차별에 대한 정도를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적대적 여성 차별 (가령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등) 수치가 높은 남학생들의 경우 이러한 (헐벗은-_-여성의) 사진을 보여줄 경우 타인의 생각, 느낌, 의도 등을 분석하는 기능의 뇌 부위 활성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도 흥미로운데, 남학생의 경우 반라의 여성 사진과 어떠한 단어 (예를 들어 밀다-만지다-당기다 등) 를 연관지을때 일인칭 형식을 사용하는 경향성이 보였고, 옷을 다 입은 여성의 경우는 삼인칭 형식이 두드러졌다. 반면 여학생의 경우는 그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선행 연구 결과로는, 섹스어필한 (헐벗은) 여성의 사진을 남성에게 보여준 다음 그 여성과 (평상복을 입은 채로) 일대일로 (취업 면접이라든지...) 마주하게 될 경우 남성은 그 여성에 대해 성적 행위에 연관된 단어들을 보다 많이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피스크 교수는 "딱히 검열을 지지하는건 아니지만 그런 현상을 피하려면 직장에는 야한 사진 갖다놓지 말라"고 충고한다.

진화심리학에서 이성에 대한 대상화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이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의 젊음과 그에 따른 명백한 수태가능성이고 반면 여성의 경우는 남성의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위치와 보유 자원의 유무다. 말하자면 그러한 것들이 이성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


관련하여 일전에 내가 "(페북 프로필 사진에 보이는) 여자의 예쁜 외모는 (남자에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가 뭔가 (글로써) 몰매를 맞았던 기억이 날 듯도 하고, 안 날 듯도 하다. ㅋㅋㅋ

SNS에서 나름 (자칭) 합리적이고 심오한 정치-사회적 담론을 즐긴다는 아재들이 또 페북에서 예쁜 여자만 봤다 하면 뭔 말을 해도 댓글에 꽃사진이나 던진다거나 그 여성이 뭔 헛소리를 지껄여도 아무 반론도 없이 아부나 떨고 찬양만 해대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나 인간 수컷 은 奀(망)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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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주소: http://pandasthumb.org/archives/2016/05/a-devastating-c.html


유럽의 은퇴한 식물유전학자 Wolf-Ekkehard Lönnig가 진화론 현대종합의 근간이 되는 집단유전학이 품고 있는 핵심적인 약점을 짚었다. 그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If only a few out of millions and even billions of individuals are to survive and reproduce, then there is some difficulty believing that it should really be the fittest who would do so."

"생식 과정에서 만드는 수백만~수십억 마리의 자식들 중 극히 일부만 살아남게 된다면, 그게 정말로 '적합'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고 90년 전에 이미 다 해결된 이야기를 마치 지금도 문제가 되는 것인양 낚시 말했다고 한다.


관련하여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J.B.S. Holdane, Ronald Fisher, Sewall Wright가 '제한적 개체 수의 유전자 부동'에 관한 표준 모델을 발표하였다.


가령, N 마리의 부모가 각각 많은 수의 자손을 각각 같은 수만큼 낳는다고 가정하자.


  1. 그 수가 무제한으로 여겨질 만큼 많을 경우에는 각각의 부모는 동일하게 유전적 영향을 내려주게 된다. 그 자손들은 무작위적으로 상호 조합을 이루어 모든 가능한 유전형을 예상되는 빈도만큼 보여주게 된다.
  2. "자연 선택"이 일어날 경우, 그 유전형의 발현 빈도는 정확하게 예측대로 (생존 또는 번식에 유리한 표현형을 내는 유전형의 빈도수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게 된다.
  3. 과밀집된 인구밀도에 의한 절멸이 발생하게 되고, (부모와 같은 수의) N 마리의 자손들만 생존하게 되어, 이로써 전체 집단의 개체 수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결국 이는 모든 유전형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N 마리의 부모로부터 수많은 자손들이 태어났으나 그 중 N 마리만 살아남아 성체가 되었을 경우, 즉 자연 선택의 환경압의 영향 하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을 N 만큼 무작위 추출했을 때의 유전형 빈도수와 같다. 이러한 생존 자손들로부터의 무작위적 샘플링은 유전자 부동을 유발한다.
  4. 예를 들어 N=10,000 이라고 할 때, A와 a라는 두 유전자쌍이 동일한 빈도로 동일한 숫자의 자손을 낳는데 A의 생존률이 1% 높을 경우, A 유전형의 빈도수는 1/(1+0.99)=0.50251256... 정도 될 것이다. Lönnig가 걱정할 많큼 많은 수의 자손들이 죽어버릴 테니, 그 자손의 수는 N=10,000 마리 만큼만 남게 될 것이다. 
  5. 간단하게 이항분포로 계산해 보면, [http://goo.gl/1YvlQx] 한 세대 동안 A의 빈도수가 a보다 높게 나올 확률은 대략 0.681725가 된다. 
  6. 각 유전자쌍이 동일한 빈도와 동일한 적합도를 갖고 있으면서 세대를 더해 갔을 때 a가 소멸하고 A가 전체를 차지할 확률은, P.A.P. Moran (1958)Motoo Kimura (1962)가 계산해 놓은게 있으니깐 참조해 보면 된다. 결론적으로, 그 확률은 0.99999 (이렇게 9가 43개 이어진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유전학자"라면서 왜 "집단유전학"에 이렇게도 무지한 걸까? 왜냐면 Lönnig은 독일의 Max Planck 연구소 재직 당시 연구실 홈페이지에 창조론 관련 자료를 올려서 물의를 일으켰던 창조론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독일의 “Wort und Wissen”이라는 창좀 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분은 "husk tomato" 등의 식물에 대한 유전자 돌연변이의 영향이 주요 전공이라고 한다.


원문 포스팅에서는, 집단유전학의 "자연 선택"으로 인한 유전자풀 shift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뢰닉 박사님께 카지노에 한 번 가보시라고 제안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무작위적이지만 아~주 살~짝만 카지노 하우스에 유리하게 설정돼 있는 게임들을 하다 보면 주머니에 돈이 어쩜 그렇게 싹 다 없어지는지 알고서 깜~짝 놀랄 거라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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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주제는 시대를 초월해서 핫한 주제인듯 하다.

이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다양한데, "낙태"를 예로 들면, 극단적으로 가자면 "수정 직후부터 영혼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여겨야 하며 낙태는 살인이다" 에서부터 "태아는 독립적 생존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모체에 기생하는 모체 기관 조직의 일부 또는 모체를 이용하여 자기증식하는 기생체일 뿐(‪‎fetal parasitism‬)이므로 낙태할 권리는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 까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로마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며, 후자의 경우는 여성인권운동의 발로에서 소위 '모성'에 대한 사회적 강요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 억압이라는 주장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이것은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들어 배포중인 이미지 카드 중 한 장이다. 소위 페미니즘 진영에서 자주 제기하는 주장 중 하나인데, 어떤 맥락에서 나온 주장인지 그 취지는 이해하나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주된 맥락은 모든 여성들에게 모성을 강요하고 여성에게만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이를 자의로 중단했을 경우에 찾아오게 되는 죄책감 및 사회의 비난에 대항하는 논거로써 사용할 수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많이 내세우는 것이 1950년대에 의료계에서 주장하던 fetal parasitism, 즉 태아는 모체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기생체이기 때문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모체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논리다. 그로써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게 됐을 경우 낙태시술로써 임신과정을 중단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약간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생명윤리학자 임종식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가 (당시 서울대 철학과 강사/가톨릭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상임연구원) 철학자 Michael Tooley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을 브릭(BRIC)에서 발행한 웹진에서 찾을 수 있었다.(pdf 링크)

콜로라도 주립대학 철학과의 Michael Tooley 교수는 "the moral symmetry principle(도덕적 동등성 원리)"로써 "the potentiality principle(잠재성 원리)"에 반박하고 있다. 짧게 말해서 Tooley의 주장은 "태아는 생존권을 지닌 존재"라는 명제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과과정 또는 관계를 새로이 만들지 않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잘못된 행위로 볼 수 없을 경우, 그러한 과정이나 관계를 차단시키는 것 또한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도덕적 동등성 논리"로 요약된다. 즉 (인과를 만들지 않는 행위인) 피임이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면 (인과를 차단하는 행위인) 낙태 역시 그렇게 심각한 잘못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그 근거로써 한 쪽이 살려면 다른 한 쪽이 죽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예로 들어 인간의 생명을 동등하다고 볼 경우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다른 쪽을 선택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동등성"은, 그 행위의 "동기"를 인지함으로써 반박될 수 있다. 즉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살리지 않는 것"과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써 죽이는 것" 사이에는 도덕적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필자의 말을 빌면. "어떤 행위가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했는지 그리고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한 것이 상대방의 죽음에 원인으로서 기여했는지가 그 행위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즉 자연적인 흐름을 시작하지 않는 피임과 그 자연적인 흐름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낙태 사이에는 도덕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태아’는 당연히 ‘인간’에 해당한다고 본다. 배추벌레나 배추흰나비나 배추흰나비 알이나 모두 배추흰나비라는 동일한 하나의 ‘종’으로 보는데 왜 유독 ‘인간’만 ‘태아는 사람이 아니다’ 또는 ‘생명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건 ‘죄책감’의 문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살인은 나쁘다’고 배운다. 물론 ‘대의’를 위한 ‘숭고한’ 살인 또한 존재하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한 살인은 무조건 나쁘다고 배우는 것이 사실이다.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할 경우 낙태를 한 사람은 그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타인들의 ‘도덕적’ 비난 또한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서 자유로우려면 그 ‘(모든) 살인은 나쁘다’는 개념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태아는 (아직) 인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 크게 두 가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 않나 싶다. 페미니즘의 경우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후자를 택하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취지’는 이해하나 ‘동의’는 못하겠다고 할수밖에 없다.


"태아는 사람인가" 여부에 대한 입장은 첨예하고 복잡한 윤리적-철학적 이슈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사실 이 주제에서는 어느 한 쪽을 무조건 옳다-그르다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많으며, 실제로 그 어떤 주장도 반대되는 주장에 확고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쉽게 가는 법이 있긴 하다. 극단적으로 가면 된다. 수정 또는 착상 직후의 태아를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고 그에 대한 기본권을 모두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태아는 그 자체로써 '인간'이라 할 수 없으며 단지 모체라는 '숙주'에 연결되어 영양분을 먹고 증식-분화하는 '기생체' 또는 '암세포와 비슷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삶이 언제나 그렇게 극단적으로만 흐르던가? 그렇게 되면 결국 "관점의 차이"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기 마련이다. 무릇 "윤리"나 "철학"의 문제는 "과학" 또는 "사실"의 문제와 많이 다르다. 일단 그것부터 인정하고 나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듯 하다.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임종식교수가 BRIC 에 올린 글은 총 세 개로, 이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Citation: 임종식(2003). 태아는 어떤 존재인가?-잠재력논변을 중심으로. BioWave, 5(2): 2. Available from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review0&id=493 (Mar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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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The winner doesn’t always take all"


진화적 자연선택 메커니즘 중에 frequency-dependent selection(빈도 의존적 선택) 이라는 기작이 있다. 이는 '군집 내 개체의 수'에 의한 진화적 선택을 말한다. 특정 형질이 군집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진화적 적응에 유리하게(positively) 또는 불리하게(negatively) 작용한다는 것을 말하며, 알려져 있는 바에 의하면 negatively frequency-dependent selection 의 경우 다수를 차지하는 군집의 형질이 불리하니 억제되고 소수의 형질이 유리하니 증가되는 경향성으로써 군집 내 형질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Current Biology 에 한 논문이 출판되었는데M. xanthus 라는 '사회성 세균'에서는 오히려 positively frequency-dependent selection 이 군집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논문이다.

이들 박테리아는 굶기면 모인다. 그런데 같은 유전 형질을 가진 녀석들끼리는 서로서로 모여서 multi-cellular fruiting body라는 구조 를 형성하는데, 이들과 다른 유전 형질을 가진 녀석들이 섞이면 서로서로 fruiting body(자실체) 형성을 방해한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starvation(굶주림) 등의 혹독한 외부 환경이 생길 경우, 그로 인해 동종의 세균끼리 군집을 형성하여 함께 살아남기를 도모하는데, 단일 군집에는 같은 유전형의 세균들이 모이며 그 결과로는 군집마다는 다양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듯 하다.

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동종끼리 모여 세력권 형성하여 최대한 살아남고, 이로써 군집 내에서는 내부적 획일성을 유지하면서 환경에 상대적으로 덜 적합한 군집들도 살아남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 집단의 다양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이야기.

재밌는 것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인간의 경제 시스템에서도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언급을 디스커젼에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401625080008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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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3년 즈음, “진화에 필요한 시간"에 관하여 지적설계론 진영과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일련의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기에 여기 살짝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은 이미 다 반증된지 오래된 것이긴 하다.) 일단, 난 수학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으므로 논리와 근거, 그리고 결론 정도만 참고하였다.


(0) 지적설계론: "진화에는 선택해야 할 변이가 한 가지 늘어날 때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지구의 나이라고 하는 45억년은 우연적 변이와 자연적 선택에 의한 진화를 일으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수준의 진화가 가능하려면 외부의 '지적 설계자'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We Have No Excuse- A Scientific Case for Relating Life to Mind" (Part1) (Part2) by Robert Deyes


This article explains why Monod is wrong and the claim of chance fails. It fails because probability decreases exponentially at an accelerating rate as the complexity of a system increases only incrementally. Because of the phenomenal rate of reduction even billions and billions of years of time and opportunity are not adequate for chance to mimic the simplest functions of life. 

To make matters worse, amino acids degrade very quickly. They are very unstable. So, while we are trying to get the first of 382 genes necessary for life, the environment is constantly switching off the machine. We don’t have billions of years. Maybe we have only an hour. We are like robbers in the bank caught by the police before we have time to run even a few of the trials necessary to get the vault open. The fact that renders the materialistic mechanism impotent is the exponential increase in the amount of probabilistic resources needed for the tasks chance claims to have performed. The exponential increase renders the resources available insufficient. Each additional step in the sequence exponentially increases the time needed to achieve any function, much less all of the function needed to comprise life. 

The primary defect of the unobserved hypothesized process of biological evolution is the absurd implausibility of the claim that a random mechanism can produce the sophisticated array of functional systems needed to run life. The exponential increase in the time necessary for each new step needed to attain the required function is the killer. Like a house of cards, the assembly of machines themselves requires an orchestrated timing. One cannot start building a sand castle today and expect to finish the job a year later after natural selection has torn it down.



(1) 윌프  이웬스: "진화에 필요한 시간은 exponential 이 아니라 logarithmic 이므로, 진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Wilf, H. S.  Ewens, W. J. (2010). There's plenty of time for evolution. PNAS, 107: 22454-22456. [http://www.pnas.org/content/107/52/22454.full ]

"Objections to Darwinian evolution are often based on the time required to carry out the necessary mutations. Seemingly, exponential numbers of mutations are needed. We show that such estimates ignore the effects of natural selection, and that the numbers of necessary mutations are thereby reduced to about K log L, rather than KL, where L is the length of the genomic “word,” and K is the number of possible “letters” that can occupy any position in the word. The required theory makes contact with the theory of radix-exchange sorting in theoretical computer science, and the asymptotic analysis of certain sums that occur there."


(2) 유어트 & 뎀스키 et. al.: "natural selection 으로는 적합한 mutation을 찾지 못하며, epistasis 등 다른 요소들을 제외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했기 때문에 진화에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은 옳지 않은 주장이다"

Ewert, W., Dembski, W., Gauger, A.,  Marks II, R. (2012). Time and Information in Evolution. BIO-Complexity, 2012(0). [http://www.bio-complexity.org/ojs/index.php/main/article/view/BIO-C.2012.4]

"Wilf and Ewens argue in a recent paper that there is plenty of time for evolution to occur. They base this claim on a mathematical model in which beneficial mutations accumulate simultaneously and independently, thus allowing changes that require a large number of mutations to evolve over comparatively short time periods. Because changes evolve independently and in parallel rather than sequentially, their model scales logarithmically rather than exponentially. This approach does not accurately reflect biological evolution, however, for two main reasons. First, within their model are implicit information sources, including the equivalent of a highly informed oracle that prophesies when a mutation is “correct,” thus accelerating the search by the evolutionary process. Natural selection, in contrast, does not have access to information about future benefits of a particular mutation, or where in the global fitness landscape a particular mutation is relative to a particular target. It can only assess mutations based on their current effect on fitness in the local fitness landscape. Thus the presence of this oracle makes their model radically different from a real biological search through fitness space. Wilf and Ewens also make unrealistic biological assumptions that, in effect, simplify the search. They assume no epistasis between beneficial mutations, no linkage between loci, and an unrealistic population size and base mutation rate, thus increasing the pool of beneficial mutations to be searched. They neglect the effects of genetic drift on the probability of fixation and the negative effects of simultaneously accumulating deleterious mutations. Finally, in their model they represent each genetic locus as a single letter. By doing so, they ignore the enormous sequence complexity of actual genetic loci (typically hundreds or thousands of nucleotides long), and vastly oversimplify the search for functional variants. In similar fashion, they assume that each evolutionary “advance” requires a change to just one locus, despite the clear evidence that most biological functions are the product of multiple gene products working together. Ignoring these biological realities infuses considerable active information into their model and eases the model’s evolutionary process."


(3) 코버트  렌스키 et. al.: "오히려 deleterious 한 mutation 이 있어야 natural selection에 의한 적응적 진화에 유리하며, 특정 epistatis 의 경우 진화가 오히려 빨라질 수도 있음"

Arthur W. Covert III, Richard E. Lenski, Claus O. Wilke, and Charles Ofria (2013). Experiments on the role of deleterious mutations as stepping stones in adaptive evolution. PNAS 110 (34), E3171-E3178. [http://www.pnas.org/content/110/34/E3171.full]

"Many evolutionary studies assume that deleterious mutations necessarily impede adaptive evolution. However, a later mutation that is conditionally beneficial may interact with a deleterious predecessor before it is eliminated, thereby providing access to adaptations that might otherwise be inaccessible. It is unknown whether such sign-epistatic recoveries are inconsequential events or an important factor in evolution, owing to the difficulty of monitoring the effects and fates of all mutations during experiments with biological organisms. Here, we used digital organisms to compare the extent of adaptive evolution in populations when deleterious mutations were disallowed with control populations in which such mutations were allowed. Significantly higher fitness levels were achieved over the long term in the control populations because some of the deleterious mutations served as stepping stones across otherwise impassable fitness valleys. As a consequence, initially deleterious mutations facilitated the evolution of complex, beneficial functions. We also examined the effects of disallowing neutral mutations, of varying the mutation rate, and of sexual recombination. Populations evolving without neutral mutations were able to leverage deleterious and compensatory mutation pairs to overcome, at least partially, the absence of neutral mutations. Substantially raising or lowering the mutation rate reduced or eliminated the long-term benefit of deleterious mutations, but introducing recombination did not. Our work demonstrates that deleterious mutations can play an important role in adaptive evolution under at least some conditions."

"Covert et al. (2013) showed in simulations that certain types of epistasis can actually speed up evolution. (Disclaimer: I’m an author on the Covert paper.)"

- Claus Wilke [http://serialmentor.com/]



(4) 뎀스키: FAIL
〉 Dembski == Dumbski
TRUE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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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 [종교, 윤리, 철학] - 지적 사기: 앨런 소칼 vs 과학 지식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구성주의


이전에 소개했던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유튜브 영상에 댓글이 달려 문답을 주고받았는데, 블로그에도 공유해 본다.


가만 보면 그런 사람들 꼭 있다. "인간 지성이 진화에 의해 나온 것이라면 항상 변화하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 진화론이라는 과학 이론 역시도 믿을 수 없다." 앨빈 플란팅가 같은 철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과학 지식의 상대성과 불완전성을 침소봉대한다.


그런데, 엄연히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불완전할지라도, 그로 인해 그 "사실"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는가? 게다가 특정 사실을 불완전하게 알아냈다고 해서 그 불완전함으로 인해 전혀 생뚱맞게 인간의 상상력으로써 지어낸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 따위의 "허위 사실"이 기존의 "사실"을 제치고 "새로운 사실(alternative fact)"가 될 수 있는가?


일반인과 전성기의 우사인 볼트가 백미터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우사인 볼트가 달리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서 일반인이 이길 수도 있다는 확률이 영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이 경기에서 누가 이길 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우사인 볼트가 이길 가능성이 압도적이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가?


Q: "진화론도 믿어야 하는거 맞긴 맞잖아요 ㅋ 저도 늘 진화론이 증명이된거라 생각했는데 그거 반박하는 과학자들도 많던데요? 영상보니깐 꽤 설득력이있던데요.. 그리고 지적설계론이든 창조론이든 토론보면 기독교 쪽이 많이 이기던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케 생각하세요?"


A: ㅎㅎ 사실, 토론은 현장에서 말빨이 세면 장땡인거라 엄밀한 과학적 논증이나 제대로 된 논박이 어렵죠. 특히, 토론의 승패는 직후 청중들한테 얼마나 설득력있었는지를 판가름해서 나누는 것인데요, 자연세상은 일반인의 상식보다는 훨씬 복잡하게 돌아가거든요. 간단명료하고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게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확률적인 사건과 통계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생명의 진화입니다.


그런데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 신자들은 그 틈바구니를 '지적 설계자' 내지는 '신'으로 땜빵질합니다. 듣기에는 그게 단순 명료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기 때문에 기본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게 맞는 것처럼 들리게 마련이죠. 하지만 그건 "무지에의 호소"라는 비형식적 논리오류에 기반해요. 쉽게 말해서 치밀한 검증 과정을 거친 엄밀한 논증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건 누군가 만들어서 그렇다"는 통빡에 의한 게으른 논증에 불과하다는 거죠.


그러나 그건 과학자로서의 자세라면 실격입니다. 사이언스에서는 절대적으로 100% 신봉하는 것은 없어요. 작은 부분이라도 반드시 검증이 들어가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반증이 되면서 계속적으로 업데이트됩니다.


반면,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에서의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전제는 절대로 검증되거나 수정될 수 없어요. 즉,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은 태생적으로 "과학"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일종의 "신앙"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몰라도 말이죠.^^


즉, 진화론은 "지식으로서 아는 것"인 반면에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은 "신앙으로서 믿는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진화론에 대한 반증이요? 그것이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분석일 경우 충분히 통합니다. 현대의 진화론을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반증할 수 있다면 노벨상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 반증을 "신앙"으로 하려드는건 그 신앙의 "근본 대상"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능하기 때문에 말이 안됩니다. 그 존재 유무에 상관 없이요.


그리고 "과학자"라고 할지라도 본인 전공 이외의 분야에서는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에 불과합니다. 학사 석사 박사 받으면서 점점 다루는 분야가 좁아져요.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소위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과학을 가장 많이 믿는 이공계 박사들은 고체물리 박사들이랑 재료공학 박사들입니다. 생물 관련 전공 중에서도 식물생리학자나 의사들 같은 경우는 창조론 많이들 믿긴 합니다만, 세부전공으로 들어가자면 그들 역시 진화생물학에 대해서는 그냥 생물학과 학부 1학년때 일반생물학 끝자락에 생태학이랑 같이 한 달 남짓 배우는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창조론 믿는 과학자들" 중에 권위있는 진화생물학자나 천문학자가 과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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