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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인류만의 독점적 전유물이 아니다.

 

그림: 초파리의 짝짓기. (출처: 위키백과 영문판)

“문화”의 정의를 “특정 그룹에서 사회적 행동의 학습으로 인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관습적 행동 (웹스터 사전)” 또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정의할 경우, 문화는 인간 뿐 아니라 원숭이나 고래, 또는 앵무새 같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나타나는 집단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지식으로라면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문화를 갖는 동물들에게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최근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집단 학습 및 모방 행동이 초파리와 같은 곤충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계속 읽기)

            

[이 글은 필자가 브릭에 연재 중인 글 중 앞부분 일부만을 올린 것이다. 전체 글을 읽고자 하면 다음 링크를 방문하기 바란다. (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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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카오스재단과 공동으로 강연회 시리즈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이 강연은 이전에 소개한 앨런 소칼의 소위 '지적 사기'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 흥미롭다. 



1부에서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오세정 교수가 강연을 진행하며 96년도에 벌어졌던 포스트모던 과학지식사회학에 대한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가짜논문 사건도 다루고 있다. 당시 이에 관려하여 오세정교수가 참여한 언론 지면상의 토론이 있었으며, 그에 대한 오세정 교수의 자세한 부가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이후 2부의 토론 파트에서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와 카이스트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 2014 오늘의 시대에 대한 문화적 성찰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그 동안 과학은 주로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전제한 뒤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부딪히는 사회의 많은 문제들도 과학기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과학 정신에 대해 교육하는 일"이 중요한데 "특히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는 과학 지식이 객관적으로 얻어지는 과정과 그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와 동시에 "과학자들이 인문학적 지식을 갖는 것도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부 강연: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오세정 : 우리가 사실은 한국에서 과학기술의 의미를 한 번,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때는 됐다고 생각을 해요. 여태까지는 사실 우리나라의 제일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소위 과학문화가 거의 없다는 게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서구 같은 경우에는, 특히 미국 같은 경우에는 과학 프로그램, TV프로그램도 굉장히 인기 있는 것들이 많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청을 했고 책도 많이 팔렸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책을 쓰더라도, 과학에 관한 일반 대중의 책을 쓰더라도 어려운, 굉장히 일반 대중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이 없고 그런 것들이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아니면 제 친구들한테도 물어보면,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친구들한테 들어보면 고등학교 때 정말 힘들었던,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아주 지겹게 공부를 하고 나오자마자, 그게 이제 다 해방이 되자마자 과학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현대사회가 과학적으로 변해가면서 사회 자체가 많이 변해가는데 그 흐름을 별로 잘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 같고 과학기술이라는 게 그냥 ‘이거는 전문가들이 하는 것’ 이렇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정부도 좀 그런 역할을 한 편이고요.


2부 토론 – 홍성욱 교수, 정하웅 교수





김상환(사회) : 오세정 선생님 말씀에 이어서 지금부터는 질문과 토론 시간,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질문과 토론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지정 토론자로 모신 두 선생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홍성욱 교수님 올라와 계신데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동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하셨습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를 맡고 계십니다. 그 옆에는 정하웅 선생님 올라와 계십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다 이수하셨는데요. 현재는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KAIST-지정석좌교수님으로 계십니다. ‘복잡계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시는 젊은 과학자이십니다.


홍성욱 : 우리나라에 지난 몇 년 동안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퍼센티지로 봤을 때 상당히 증가를 했습니다. 그 중에 상당부분은 기초과학 그 자체에 대한 지원이기보다는 기초연구에 원천연구라는 것을 더해서 그 둘을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원천연구의 상당 부분은 그 전에 응용연구라고 분류가 되던 그런 부분을 가지고 온 겁니다. 퍼센티지로는, 예를 들어서 30%에서 50% 정도 증가를 했는데, 실질적인 내용상의 증가는 없습니다. 숫자놀음 비슷한 상태였고요. 문제 중의 하나는 리서치는 리서치대로, 개발연구는 개발연구대로 그냥 둘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정하웅 : 저는 아주 그냥 쉬운,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리고 오늘 주제가 과학과 문화인데 과학에 대해서만 너무 치중된 것 같아서 문화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드리려고 합니다.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 홈페이지 가보시면 알겠지만 이 열린연단의 목적이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조망하고 토론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문화의 정의는 학문, 문화, 예술, 여론 등을 포함하는 상황의 전체적인 지표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검토를 하려고 한다라고 하는 게 주제입니다. 정의를 해야겠는데 제 짧은 지식으로 정의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리고 문과 분들의 특성을 따르기 위해서 여기 문과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문과 분들의 방식을 따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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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arly Humans Became More Feminine, Which Led to the Birth of Culture"


요약: "문화"의 발달은 Homo sapiens 의 출현으로 인해 인류의 조상종보다 가녀리고 섬세한 인류가 출현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었으며, 이는 대체로 세대를 거듭하면서 self-domestication 및 성선택에 의해 공격성의 원인이 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는 이야기.

"In most primates the physically strongest male tends to dominate, but in early humans the smartest or the most creative males may have come to the forefront." (대부분의 영장류에서는 육체적으로 가장 강한 수컷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경향이 있으나, 초기 인류의 경우는 가장 영리하거나 가장 창조적인 수컷들이 전면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콩고의 강 양쪽에 거의 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침팬지 vs 보노보 사이의 비교 연구로써 뒷받침된다. 침팬지는 sexual dimorphism 이 매우 크다. (암컷보다 수컷의 덩치가 매우 크며 공격성도 강한데, 이는 체내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음에 기인한다.)

타 종족과의 생존경쟁이 덜한 보노보의 경우는 콩고의 강 맞은편에서 고릴라와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침팬지와 달리 폭력성이 강한 수컷을 벌하고 생식으로부터 배제하는 self-domestication으로써 공격성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초기의 원시 인류에서도 같은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되고 있다. (Richard Wrangham, Harvard University)

또한 이러한 'feminitization'에 의한 수컷 공격성의 감소는 성평등을 향한 경향성에도 기여를 한다. 이러한 친밀성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끼리의 밀접한 사회적 교류와 이로 인한 유전적 다양성을 촉발하여 진화적 유리함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sex equality suggests a scenario where unique human traits, such as cooperation with unrelated individuals, could have emerged in our evolutionary past.” (성평등은, 예를 들어 혈연관계가 없는 개인들과의 협력과 같은, 인간의 독특한 형질이 과거에 진화적으로 어떤 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시나리오를 예측케 한다.)
- Andrea Migliano

다만, 농경사회의 시작은 남성들로 하여금 여러 명의 아내와 자식을 둘 수 있을만한 재화의 축적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남녀간 성적 불평등이 재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는 농경사회 이후의 인류 두개골의 구조가 그 이전 또는 현대의 인류 두개골에 비해 더 원시적인 남성적 모습에 가까워졌음을 보면 예측 가능하다.

결국 인류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개인들을 배제하는 'proactive violence'로써 집단의 생존과 다양성에 해가 되는 'reactive violence'를 줄여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수천년간에 걸친 여성에 의한 성선택과 더불어,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어 보다 '여성적인(feminine)' 방향으로 진화되었고, 이는 과거에 비해 성평등적인 사회와 더불어 "문화"의 시작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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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르원틴과의 인터뷰 (by David S. Wilson)

원문: The Spandrels of San Marco Revisited (by The Evolution Institute)


생물학적 진화와 인류의 문화적 진화에 관한 인터뷰가 있는데, 내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 섞여 있는지라 꽤 어렵다. 다음은 "단속평형설"로 유명했던 고 스티브 제이 굴드와의 "산 마르코 성당의 스팬드럴논문 공저자였던 리처드 르원틴을 역시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빗 윌슨이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르원틴에 따르면 굴드는 진화학자 사이에서 스타가 되고 싶었기에 임팩트를 주기 위하여 과장과 단순화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즉, 단속평형에 의한 진화의 정도를 그래프로 그린다고 한다면, 원래는 점진적 기울기의 변화와 급격한 기울기의 변화가 교차되는 것인데, 굴드는 학술 발표에서 명확한 인상을 심기 위해 진화가 완전히 멈추었다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르원틴은 에드워드 O. 윌슨의 "사회생물학"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는데, 예를 들어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소위 "윌슨 학파"의 사회생물학 (또는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인간의 "본성"의 하나라고 본다. 하지만 반대의 예로써 군대에 가지 않음을 고집함으로써 평생 감옥에 갇히는 경우를 어떻게 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그것도 그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고집함으로써 나름의 공격성을 표출한 것이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공격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대조가 불가능한 소위 "just so story"라는 것. 심하게 말하자면 아무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I think the worst thing we can do in science is to create concepts where what is included or not included within the concept is not delimited to begin with. It allows us to claim anything. That’s my problem with Sociobiology. It’s too loose."

"내 생각에 과학을 하는 데 있어 최악은, 애시당초 무엇이 포함되고 포함되지 않는지를 한정짓지 않은 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면 (말로는) 뭐든 주장할 수 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회생물학'의 문제다. 너무 느슨하다는 것."

또한 인터뷰어인 데이빗 윌슨은 생물학과 인류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진화생물학자인데, 그와 관련하여 르원틴에게 "인류문화의 진화"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인류문화의 진화라 함은,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적 유전의 형식으로써 후대에 전달이 되는데, 또한 환경에 의해 적응을 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전통과 변화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르원틴은 이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는데, 굳이 진화에 비유하여 인류 문화의 "진화"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인류 문화의 "역사"라 하면 안되냐고 반문한다.

요약하자면 "인류 문화의 진화"는 문화의 "역사"를 생물학적 "진화"에 공통점을 끼워맞춘 잘못된 유비추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동식물의 경우는 종의 변화와 더불어 환경의 변화를 함께 겪는 "공진화"를 하는 반면, 인간의 경우는 인간 자체의 원인에 의한 변화가 주도적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두뇌의 발달로 인하여 동물들의 틀에 박힌 의사소통 방법이 아닌 언어에 의한 이성적-논리적 소통이 가능해졌다는 독특함으로 인해 "문화"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 문화 자체의 생성과 변화 또한 진화의 결과로서 나타났기에 굳이 "문화"라는 것까지 이중적으로 진화적 시각에서 보기보다는 하나의 역사로서 인식하는 것이 더 옳다는 이야기.  

"Organisms are always creating their own hole in the world, their own niche(local environment)."
"생명체들은 언제나 세상 속에 자신들만의 구덩이, 즉 자기 자신만의 주변 환경을 만들어낸다."

윌슨은 그래도 문화적 "역사"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기에, 르원틴의 발언 중 "생물체는 언제나 자신(들)만의 환경(niche)을 만들어 낸다는 말에 착안하여, 공진화와 niche construction 의 발로에서 문화적 "적응"이 나타난다면, 이는 단순한 "역사" 이상의 좀더 specific 한 부분이 될 듯 하다며 훈훈한 마무리.

르원틴 역시도 환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공진화의 결과로서 생물들에 의해 변화를 함께 겪는다는 이야기를 생물학자들에게 하면 다들 놀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는 코멘트와 함께, 모두들 화이팅을 외치며 훈훈하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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