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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연구계획 수립하기


대학원에 입학해서 많은 경우 선배나 포닥이 하는 실험 중 일부를 받아다가 그게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실험 방법만을 배워서 진행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 랩미팅 시간에 대뜸 '그래서 그 실험은 뭣땜에 and/or 뭘 보려고 한건데?'라는 질문에 대답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장 우선적으로, '내가 이렇게 실험을 많이 했다' 하는 것을 보여주기 이전에, 그 많은 실험들을 왜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은 사고 과정을 단계 단계별로 진행해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나름의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서 체계적으로 설득력 있는 가설-검증 과정을 수행할 수 있을 경우 다른 방법을 따르는 것도 좋다.


0. Background

가장 최우선 과제는, 그 주제를 다루는 논문을 많이 읽어서 내용 및 트렌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미국 NIH의 PubMed 데이터베이스에서 논문 검색을 해서 찾는 방법이 있고, 요즘 들어서는 구글 학술검색도 많이 좋아져서 검색된 특정 논문의 피인용 숫자 및 그 논문을 인용한 다른 논문들의 목록까지도 보여주고 있기에 유용하다. 개인적으로는 PubMed 검색과 구글 학술검색을 병행하는 편이며, 특히 PubMed Central (PMC) 데이터베이스로 검색되는 논문들은 오픈액세스 라이센스라서 소속 기관이 특정 저널과 계약관계가 없어도 무료로 볼 수 있는 논문들이라, 찾는 논문들이 여기서 검색되면 제일 편리하다. (브릭에서 전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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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alues

image from: xkcd.com


얼마 전, 학교 전산실에서 "통계 표본크기 산출" 주제의 세미나를 듣고 왔다.


???: "요즘 high IF journal에 논문 섭미션할때 그냥 p-value만 들이대면 리뷰오고 통계로 까이고 그러면 리젝받고. 그러면서도 리뷰어에게 허벌나게 치욕적 비난받고 낮은 IF 저널에 냅니다. 온코타겟을 살"(...)


결국 관건은, 통계 검정력을 위한 표본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제시해야 논문 피어 리뷰어도 납득할거라는 얘기인듯 하다. 최근 들어 의학 및 심리학 논문들에서 재현성 위기 (https://en.wikipedia.org/wiki/Replication_crisis) 때문에 엄청 난리였는데, 잘못된 통계 검증 때문에 연구 자체의 유의성이 잘못 설정되어 실제로 그 연구들을 다시 수행해 보았을 경우 재현성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엄청 많았다고 한다. 특히 생물학의 경우 조사 대상의 약 80% 가까이 다른 논문의 방법을 따라했을 경우 결과 재현에 실패한 경험이 있고, 약 60%의 연구자는 심지어 본인의 실험 재현에도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그 이유로 생각해볼 만한 것이, 통계적 연관성이 인과성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통계적 계산을 잘못 적용하거나 너무 약한 통계검정을 사용하여 잘못된 통계치를 근거로 유의성을 주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즘같은 경우에는 p-value (귀무가설이 참일 경우에도 이를 기각하는 결과가 나타날 확률) 만으로는 부족하고, 통계적 검정력 및 그에 입각한 표본 갯수 설정 과정도 요구하는 저널이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이에 대해 많이 공부해야 할듯 하다.


[Sample size 결정을 위한 effect size 결정]


Cohen's d : 표준화된 효과크기=실제 효과크기/표준편차

<0.4: 작은 효과크기

0.4-0.7: 중간 효과크기

>0.7: 큰 효과크기


여기서 G-Power 라는 프로그램이 실험군당 표본 수 결정을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G*Power)


참고:

https://cs.kaist.ac.kr/colloquium/files/2016103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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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단지 이론일 뿐"이라는 학생에게 UC 버클리대학의 고생물학자 팀 화이트 교수가 "과학 이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는 영상. 


흔히 "진화론은 단지 이론일 뿐 증명된 법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1)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이론" 즉 "그냥 떠올린 생각"과 "정립된 과학 이론"의 차이, 그리고 (2) "과학 이론"과 "자연 법칙"의 차이를 잘 몰라서 생기는 오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생활에서 쓰이는 "이론적으로야 그렇지"라는 말과, "정립된 과학 이론(정설)"은 동일한 단어를 쓰지만 그 의미는 꽤 다르다. 이 용어상의 괴리를 이용하여 "과학 이론 또한 완벽하지 않으므로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라는 말로써 진화론을 반증하려는 시도들을 한다.


그러나 "과학 이론"은 그런 얄팍한 꼼수로 반증되는게 아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현상에 대한 관찰 - 법칙 발견 및 정리 - 가설 설정 - 가설에 대한 검증 수행 - 검증된 가설로써 이론 만들기의 단계를 거쳐 과학 이론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론은 대개의 경우 동료평가를 거쳐 논문으로써 발표되어 전문가들에게 공개적으로 검증을 받게 된다. 이 모든 단계를 다 거쳐야 하나의 정립된 "과학 이론"이 만들어지며,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법을 통해서도 이 이론이 지지되며 반증에 대한 방어에 성공할 경우 이 과학 이론은 타당성을 더해간다.


"진화"는 관찰된 자연 현상이며 팩트이다. 이러한 관찰된 팩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과학 이론이 바로 "진화론"이다.



학생: 찰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에서 두 가지 사실이 없으면 진화론은 그냥 이론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중간 단계의 화석이 필요하고, 단순한 구성 단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물에서요. 하지만 명백하게 과학적으로 세포는 단순하지 않잖아요? 따라서 제 질문은,


"왜 우리는 모든 생명에 관한 믿음의 타당성을, 그저 한 이론에 기반해야 하는가?" 


...입니다.


화이트 교수: 상당히 포괄적인 질문이고,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질문한 학생이 ‘다윈이 했다'고 한 말에 대해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나는 다윈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소한 걸로 말꼬리 잡지는 않기로 하죠. 학생이 말한 뒷부분으로 바로 갑시다. 왜냐면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진화는 그냥 이론일 뿐이다.” 라고 하니깐요. 그쵸? 기본적으로 그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좋아요. 중력이론이라고 들어 본 적 있나요? 잘 들어맞죠. 질병에 대한 세균 이론은 어떨까요? 보시다시피, 과학에서는 “이론”이라는 용어를 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과학 이론은 어떤 누군가의 막연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게 "다윈의 생각일 뿐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긴 하지만,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어 왔고,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 입증돼 왔습니다.


“진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다만) 진화에 관한 이론(진화론)이 있고, 그것은 "생물이 어떻게 진화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를 예측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실과 관찰의 총체"입니다.


학생이 말한 "구성 단위"를 예로 들어 볼까요? 다윈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제가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엄청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윈은 DNA가 뭔지 몰랐을 거라는 점입니다. 또한 확신하건대 다윈은 핵산이 뭔지 몰랐을 겁니다. Sarah(앞 시간 교수)가 우리에게 핵산에 대해 알려주었고, 내생각에는 그게 기본 구성 단위인데요, 맞죠?


우리는 이러한 환상적인 이해를 들고서 의학으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 우리 나라의 최고 대학들에 있는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의 많은 연구자들은, 믿어주시길, 이런 연구를 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을 뽑은 것이고, 이 사람들이 바로 그 구성 단위(DNA)에 대해 연구하고 있죠. 왜냐면 그 구성 단위는 암과 같은 것들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죠.


이제,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여러분이 암에 걸렸다고 할 경우 이 통제불능의 세포에 대해 증거와 이성에 근거한 해석을 하는 쪽과, 그리고 그냥... 말하자면 “영적(靈的; spiritual)”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쪽이 있을 경우, 그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나라면 매번 언제라도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를 택하겠습니다. 그쵸? 이건 명백하게 이쪽이 맞다고 입증된 것입니다.


진화생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의학은 일부, 즉 이 거대하고 포괄적인 진화생물학의 일부입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우리 과학자들이 진화를 (과학적인) 모든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겁니다.


또한 이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분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상당히 비판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과학의 핵심적인(+비판적인) 요소는 항상 존재하는데요, 왜냐면 우리는 언제라도 동료들의 연구를 놓고 “우와! 너 이거 틀렸어! 다윈 너 틀렸어!” 라고 말할 수 있고, 다윈이 실제로 틀린 적도 여러번 있구요.


다윈은 유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게 그냥 혼합되는 건줄 알았대요. 이제 우리는 유전자가 분리되어 전해진다는 걸 알죠. (이제 우리는) 입자(DNA)가 구성 단위라는 것을 알죠.


그러나, 그것(다윈이 몰랐던 유전 법칙)이 다윈의 자연 선택에 대한 이해 속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녹아들어가는지를 보세요. 그때 만들어진 예측들을 보세요. 그 예측들을 보면서 아프리카의 한 언덕에서 맨 위(지층)의 Abdullah(라는 이름의 고인류 화석)에서 시작해서 (아래 지층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속적으로 점점 작아지는 뇌용적과 점점 커지는 얼굴을 거쳐, 마침내 침팬지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종의 생명체에 다다르는 걸 보세요.


여기서 우리는 (인류 진화에 대한) 가설을 검증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진화 이론이 잘 들어맞았다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이 경우에는 암에 대한 의생물학적 근거만큼이나 잘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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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주최 강연 시리즈 중 2017년 7월 15일에 열렸던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에 관한 강연이 있어 여기에도 공유하고자 한다. 1부 강연은 이준호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2부 토론은 조은희 조선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가 진행한다.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2017 계승과 변화를 거듭해온 인류 지성사에 대한 성찰


이준호 교수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말을 인용한다. “지금부터 500년, 또는 1000년 후에 현대 생물학의 두 개의 랜드마크를 꼽는다면 하나는 1859년의 『종의 기원』이고 다른 하나는 1953년의 DNA 구조 논문이다.” 그 같은 선정 이유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다윈(Charles Darwin)은 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철학의 정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고의 전환을 이끈 데서,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은 “유전 물질로서의 DNA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분자’ 생물학 시대”를 열게 한 데서 각각의 혁명적 역할을 발견한다. 그러나 “하나를 알고 나면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아진다는 것”이 생물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보람이라며 겸허한 도전을 촉구한다.


1부: 강연 -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준호: "똑같은 장면을 보고서 우리는 전혀 다른 질문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하고 '어떻게'라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생물학에서도 크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할 수 있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라고 하는 것은, 저희는 메커니즘 또는 기전이란 표현을 쓰는데요, 어떻게 작동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현상, 원인을 찾는 겁니다. 근접해 있는 원인을 찾는 경우를 우리는 '어떻게' 질문에 대한 것으로 연결시킵니다. '왜'라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결국 진화로 연결되는 겁니다. 진화에서 생존으로 선택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으로 귀결하는 질문이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현대 생물학에서 계속 풀어왔던, 분자생물학의 입장에서 풀어왔던 질문들은 거의 대부분 '어떻게'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이 합쳐져서 융합되는 시대에 다시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양립하고 있다가 이제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물어볼 수 있는 도구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때에 왔습니다."


2부: 토론 - 조은희 조선대 생물교육과 교수



이덕환(사회): "우리가 유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또 유전에 직접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기술들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커져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중략)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완성된 형식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사회적으로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그런 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참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일방적인 반대, 일방적인 거부감, 일방적인 찬성이 너무 극단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은희: "19세기와 20세기는 연구 방법이 굉장히 바뀝니다. 즉 다윈이 그 시절에 썼던 방법이 있고 그 다음에 왓슨과 크릭이 새로 사용했던 방법들이 있는데 왜 그때 그런 방법들이 사용되었을까 하는 측면과 함께 그것 각자가 어떤 함의를 가지는가를 질문드리고 싶구요, 또 중요하게는, 우리가 유전자를 DNA 서열이라는 형태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 유전자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그 DNA 서열을 정확하게, 또 전장 유전자 전체 서열을 다 결정할 수 있다 할 때 그것이 과연 우리의 미래나 사람의 형질을 예측하고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디까지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 특히 발생학을 전공하시는 이준호 선생님이 보다 정확하게 해주실 수 있는 말씀이 많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2부 토론 마지막 부분 질의응답시간 중



Q: 이른바 창조과학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이덕환): 2014년이라고 제가 기억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에 과학위원회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의 검토를 거쳐서 진화론하고 빅뱅 이론은 과학 이론이고 성경의 창세기와 충돌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요술지팡이를 가진 마술사가 아니다, 이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적어도 가톨릭의 해석에서는 진화론이 성경 해석하고 충돌하지 않는다고 정리가 된 셈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개신교에서는 그게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거고, 미국 대법원에서도 진화론은 과학 이론이고 창조론은 종교적 신념이다, 그래서 공립 학교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판결을 했습니다. 미국 ‘과학원’이죠, ‘Academy of Sciences’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오늘 여기서 들으셨던 이런 진화론의 진짜 핵심 과학적인 부분들,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찾아보기 어렵구요, 진화론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 해석하는 진화사회학, 진화심리학, 온갖 아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의 활동들이 너무 다양한 것 아닌가, 그래서 정작 진화론의 핵심은 다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과학계가 굉장히 난처한 부분이 저희가 어떤 연구를 해서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의 확대 해석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연구자들이 뜻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자의적으로 막 해석을 해갖고 그걸 가지고 연구자를 공격을 하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됩니다. 진화론의 응용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경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것을 진화론이 설명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얘기하는데, 진짜 다윈의 해석 그리고 왓슨의 DNA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한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그렇게 다양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과학자들은 그게 명백한,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틀 안에서는 신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그 정도로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너무 막 대단한, 세상의 모든 것을 해석해주는 이론으로 과장을 해버리면 모든 사람들이 다 불편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진화가 발전이 아니다, 진보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꽤 오래 전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상당히 건강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게 오해가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경계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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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강연 시리즈 중에 2016년 12월 10일에 있었던 "과학 기술의 윤리"라는 제목의 강연+토론인데, 그중 1부: 서강대학교 화학과 & 과학커뮤니케이션 전공 이덕환 교수의 강연이다. 근데 듣다 보니 내용이 꿀잼이다. ㅋㅋ 처음에는 뭔가 대충 설겅설겅 할 것 처럼 얘기하더니 할 말 다 하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를 짚어가면서, 유명한 2005년의 '황우석 사태'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그밖에 한국인 과학자들이 왜 돈만 처먹고 노벨상 못타고 찌질하냐고 비난 많이 받는데, 전국가적인 투자는 기술개발 쪽에 잔뜩 해놓았는데 정작 노벨상은 기술개발의 성과가 아니라 기초과학의 지식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본인이 과학 전공자라면 이 강연 한 번쯤 시간 내서 각잡고 시청하길 권한다. 꼭 봐라. 두 번 봐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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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 2016 바른 사회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성찰

과학 기술의 윤리: 과학자의 윤리에서 첨단 기술의 윤리로 


이덕환 교수는 “과학 기술의 윤리를 강화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경우에도 옳다고 전제하면서 특별히 현 상황에서는 “과학자의 자정 노력이 더 강조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힌다. 한편 자율성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적 안으로는 그 기준을 모호함 없이 명백하게 만들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어길 시에는 “관용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비판적 합리주의라 할 ‘과학 정신’을 튼튼한 기초로 삼아 “인체에 위험하지 않고 환경에 위험하지 않은 기술”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첨단의 과학 기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를 어떻게 수용하고 용납할 것인지의 문제”를 면밀히 따져보는 게 현명한 길이 될 거라 말한다.



[하이라이트] "황우석 사태" (1부 강연 中)





1부 강연: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이덕환 : 제가 ‘과학자의 윤리’라고 하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과학자의 윤리, 그러니까 과학자의 직업 윤리에 대한 이야기고요, 무게중심이 과학자에 맞춰져 있습니다. 얘기의 상당한 부분을 우리 과학 기술계의 현실, 특히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저는 오늘 ‘첨단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에 관련된 윤리적인 측면을 좀 더 강조를 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21세기의 키워드는 ‘민주화’하고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고 과학 기술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얘기인데 제일 대표적인 게 첨단 과학에 대한 윤리적 논란입니다. 특히 생명과학하고 생명공학 사이의 구분,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일부에서는 생명과학하고 생명공학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같은 거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제재와 규제를 해야 된다 이런 주장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과학 지식이 반영된 윤리 의식, 우리 사회의 윤리 인식도 이제는 첨단 과학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2부 토론: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문광훈(사회) :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의 시각으로 보면 우선 우리 과학 기술의 발전 단계가 1960년대에서 1980년대를 지날 때까지 이른바 추격형이었다는 것, 그 때문에 그냥 선진화된 기술이나 정책들, 기준들을 그저 베끼고 모방했고 그래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고려할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 자신의 기준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준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지적인, 문화적인 배경에 뿌리를 박은 우리 자신의 과학 기술의 윤리 지침과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된다는 것,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종관 : 과학 기술이 어떤 가치에 편향되지 않기 위해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인정할 만한 태도지만 그 이면, 다시 말해서 나쁜 가치, 나쁜 목적에 무기력하게 이용당하는 것에 대해서 과학 기술자들이 어떤 경계심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런 경계심을 가질 수 있는 과학자의 태도 그런 건 무엇인지 한번 의견을 듣고 싶고요. (…) 다음은 과학 기술자들이 지금 평가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 묘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뭐냐 하면 평가 제도 자체가 과학적인데 그 과학적이라는 평가 제도가 사실은 과학자를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있는 그 세계, 즉 물질의 세계 속에 있는 물질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과학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때의 윤리는 어디에 근거해야 되는 건지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습니다.


[강의록]

과학 기술의 윤리 - 과학자의 윤리에서 첨단 기술의 윤리로


(전략)


황우석 사태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던 과학 기술의 윤리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간간이 일부 과학자들의 비윤리적 일탈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의료 분야에 한정된 범위에서 제도화된 생명윤리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첨단 기술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과학 기술 투자의 저효율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이 훨씬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돼버렸다. 관료주의의 틀에 갇혀버린 과학자들도 윤리 문제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윤리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연구 수행과 논문 발표에 적용되는 연구 윤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비윤리적인 부정행위를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는 당위적 지적이 반복되고 있고, 우리 과학자들의 윤리 의식이 국제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패배주의적인 비판도 넘쳐난다. 과학 기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진 관료와 언론의 일방적인 주장이 대부분이고, 국제화를 외면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의 특성도 무시한 지적이다. 과학철학과 사회학도 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의 본격적인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 현장의 실제 문제는 외면하고, 국외자의 입장에서 먼 곳의 양 떼를 분석하는 자세가 일반적이다. 정부의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 분야의 윤리적 상황은 다른 학문 분야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흔히 정부의 고위직 인사의 청문회에서 제기되는 부당한 학위 취득, 학술 논문의 표절과 중복 출판, 연구 실적의 도용 등의 논란은 과학 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과학 기술 분야에서 논문의 표절이나 저자 표시 등의 초보적인 윤리 문제는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거의 모든 학술 단체들이 상당한 수준의 윤리 강령을 시행하고 있고, 표절 여부를 기계적으로 가려내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 기술계를 괴롭히는 윤리 문제는 따로 있다. 연구비 관리와 연구실 문화에서의 일탈 행위와 연구의 비효율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첨단 기술의 윤리 문제도 새로운 도전이다. 거의 모든 사회 문제가 과학 기술과 직결되어 있고, 사회의 윤리관도 과학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첨단 기술의 윤리에는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이다.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예상되는 기술의 경우에는 개발과 활용 단계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철자하게 감시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수용성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쉽게 정의하기도 어렵고, 제도적으로 규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 기술의 윤리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활발하고 적극적인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첨단 기술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가치 중립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중략)


황우석 사태를 겪고 난 2007년 4월에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연구 윤리 등을 명시한 '과학기술인 윤리강령'도 제정했다. 과학 기술 분야의 학술지 편집에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표절 감시가 필수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학술 논문의 표절, 저자 표시, 중복 게재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은 그런 노력의 결과다.


2005년 11월에 불거진 황우석 사태는 추격형 과학 기술의 성과에 취해 있던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과학 기술계 전체가 윤리적으로 타락한 집단으로 매도되었고, 과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 불신도 증폭되었다. 황우석 사태는 부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과학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윤리 위반 사례였다. 연구비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부터 연구 성과를 발표 단게에 이르게 하는 모든 과정이 비정상적이었다. 과학 기술계가 황우석의 비윤리적인 연구 행태를 인정하거나 용납한 적은 없었다. 다만 정치권과 정부 고위 관료의 힘을 앞세운 '영웅 만들기'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뿐이다. 황우석 사태는 정부의 지원에 매달려 성장해왔던 우리 과학 기술이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비정상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휩쓰는 사회에서는 과학 기술도 윤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중략)


황우석 사태의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1967년에 신설되어 국가 과학 기술 정책을 총괄했던 과학기술처는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2011년에 대통령 직속의 행정 위원회로 출범했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도 2년 만에 교육과학 기술부와 함께 간판을 내렸다. ICT(정보통신기술)와 함께 창조경제를 전담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 기술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 국정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리게 된 것이다. (중략)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주체가 분산되면서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연구개발 사업이 과학 기술로 둔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양수산부의 천일염 명품화 사업과 경찰청의 경찰견 체세포 복제 사업은 정부의 과학 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민주화, 외환 위기, 황우석 사태 이후 과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어버렸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주도했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사회적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출연 연구소 민영화 시도로 시작된 출연 연구소의 구조 조정은 20여 년이 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외환 위기를 핑계로 단축된 출연 연구소 과학자들의 정년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연구개발 사업의 기획, 관리, 평가의 전 과정에 대한 관료 사회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연구개발 사업의 불합리한 관료주의적 관리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과학자의 윤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과학 기술 투자의 비효율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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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카오스재단과 공동으로 강연회 시리즈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이 강연은 이전에 소개한 앨런 소칼의 소위 '지적 사기'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 흥미롭다. 



1부에서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오세정 교수가 강연을 진행하며 96년도에 벌어졌던 포스트모던 과학지식사회학에 대한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가짜논문 사건도 다루고 있다. 당시 이에 관려하여 오세정교수가 참여한 언론 지면상의 토론이 있었으며, 그에 대한 오세정 교수의 자세한 부가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이후 2부의 토론 파트에서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와 카이스트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 2014 오늘의 시대에 대한 문화적 성찰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그 동안 과학은 주로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전제한 뒤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부딪히는 사회의 많은 문제들도 과학기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과학 정신에 대해 교육하는 일"이 중요한데 "특히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는 과학 지식이 객관적으로 얻어지는 과정과 그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와 동시에 "과학자들이 인문학적 지식을 갖는 것도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부 강연: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오세정 : 우리가 사실은 한국에서 과학기술의 의미를 한 번,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때는 됐다고 생각을 해요. 여태까지는 사실 우리나라의 제일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소위 과학문화가 거의 없다는 게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서구 같은 경우에는, 특히 미국 같은 경우에는 과학 프로그램, TV프로그램도 굉장히 인기 있는 것들이 많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청을 했고 책도 많이 팔렸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책을 쓰더라도, 과학에 관한 일반 대중의 책을 쓰더라도 어려운, 굉장히 일반 대중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이 없고 그런 것들이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아니면 제 친구들한테도 물어보면,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친구들한테 들어보면 고등학교 때 정말 힘들었던,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아주 지겹게 공부를 하고 나오자마자, 그게 이제 다 해방이 되자마자 과학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현대사회가 과학적으로 변해가면서 사회 자체가 많이 변해가는데 그 흐름을 별로 잘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 같고 과학기술이라는 게 그냥 ‘이거는 전문가들이 하는 것’ 이렇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정부도 좀 그런 역할을 한 편이고요.


2부 토론 – 홍성욱 교수, 정하웅 교수





김상환(사회) : 오세정 선생님 말씀에 이어서 지금부터는 질문과 토론 시간,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질문과 토론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지정 토론자로 모신 두 선생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홍성욱 교수님 올라와 계신데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동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하셨습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를 맡고 계십니다. 그 옆에는 정하웅 선생님 올라와 계십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다 이수하셨는데요. 현재는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KAIST-지정석좌교수님으로 계십니다. ‘복잡계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시는 젊은 과학자이십니다.


홍성욱 : 우리나라에 지난 몇 년 동안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퍼센티지로 봤을 때 상당히 증가를 했습니다. 그 중에 상당부분은 기초과학 그 자체에 대한 지원이기보다는 기초연구에 원천연구라는 것을 더해서 그 둘을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원천연구의 상당 부분은 그 전에 응용연구라고 분류가 되던 그런 부분을 가지고 온 겁니다. 퍼센티지로는, 예를 들어서 30%에서 50% 정도 증가를 했는데, 실질적인 내용상의 증가는 없습니다. 숫자놀음 비슷한 상태였고요. 문제 중의 하나는 리서치는 리서치대로, 개발연구는 개발연구대로 그냥 둘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정하웅 : 저는 아주 그냥 쉬운,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리고 오늘 주제가 과학과 문화인데 과학에 대해서만 너무 치중된 것 같아서 문화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드리려고 합니다.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 홈페이지 가보시면 알겠지만 이 열린연단의 목적이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조망하고 토론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문화의 정의는 학문, 문화, 예술, 여론 등을 포함하는 상황의 전체적인 지표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검토를 하려고 한다라고 하는 게 주제입니다. 정의를 해야겠는데 제 짧은 지식으로 정의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리고 문과 분들의 특성을 따르기 위해서 여기 문과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문과 분들의 방식을 따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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