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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 링크(54분부터)


와우(WOW;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나는 게임을 안해서 이름만 들어봤는데, 와우 초창기에 새로 생긴 '줄구룹' 던전의 보스 캐릭터 '혈신 학카르'가 사용하는 감염성 저주(오염된 피)가 마치 실제 현실에서의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던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과학 하고 앉아있네'에서 다루고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워낙 흥미로운 현상인지라 다수의 역학(epidemiology) 연구자들이 분석하여 논문으로 내기도 하였다.


[전염병의 사회적 영향]


1. 메르스(MERS)


- 무능한 정권의 조기 종말


-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미러링 형태의 페미니즘 운동



2. ‘오염된 피’ 전염병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와우)에서 발생했던 사이버 전염병


- 세계적인 의학저널 Lancet의 자매지(Lancet Infectious Diseases)나 Epidemiology 저널 등에서 버추얼 게임 세상에서의 질병역학 및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실제 사회에서의 것과 매우 유사하게 나타남을 주목하였다


——————

[온라인 게임에서의 사회 현상]


1. 리니지2: “바츠 해방전쟁”


- 독재에 의한 폭정, 그에 저항한 민란, 쿠데타, 권력 추구, 이합집산 등을 관찰할 수 있었던 사건



2. 소셜 네트워크


-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사회군상


——————

참조:


Balicer RD (2007). Modeling infectious diseases dissemination through online role-playing games. Epidemiology 18(2):260-1. (https://www.ncbi.nlm.nih.gov/pubmed/17301707)


Lofgren ET & Fefferman NH (2007). The untapped potential of virtual game worlds to shed light on real world epidemics. Lancet Infect Dis. 7(9):625-9. (https://www.ncbi.nlm.nih.gov/pubmed/1771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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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사진을 볼 때와 도구를 사용할 때 남성의 뇌 활성 부위는 동일하다고 한다.

뉴스원문: http://www.cnn.com/2009/HEALTH/02/19/women.bikinis.objects/

2009년에 AAAS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의 수전 피스크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비키니 입은 (예쁜) 여자의 사진을 보면 '도구'를 다루고 '행동'을 취하는 데 관여하는 뇌내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소위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러한 남성의 반응은 개인이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부산물이다. 말하자면 수컷이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수태가 가능한 암컷을 찾는 기능이라는 것.

따라서 남자들은 여성을 대할 때 이러한 "진화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험 대상인 프린스턴의 이성애 남학생들에 대하여 성차별에 대한 정도를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적대적 여성 차별 (가령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등) 수치가 높은 남학생들의 경우 이러한 (헐벗은-_-여성의) 사진을 보여줄 경우 타인의 생각, 느낌, 의도 등을 분석하는 기능의 뇌 부위 활성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도 흥미로운데, 남학생의 경우 반라의 여성 사진과 어떠한 단어 (예를 들어 밀다-만지다-당기다 등) 를 연관지을때 일인칭 형식을 사용하는 경향성이 보였고, 옷을 다 입은 여성의 경우는 삼인칭 형식이 두드러졌다. 반면 여학생의 경우는 그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선행 연구 결과로는, 섹스어필한 (헐벗은) 여성의 사진을 남성에게 보여준 다음 그 여성과 (평상복을 입은 채로) 일대일로 (취업 면접이라든지...) 마주하게 될 경우 남성은 그 여성에 대해 성적 행위에 연관된 단어들을 보다 많이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피스크 교수는 "딱히 검열을 지지하는건 아니지만 그런 현상을 피하려면 직장에는 야한 사진 갖다놓지 말라"고 충고한다.

진화심리학에서 이성에 대한 대상화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이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의 젊음과 그에 따른 명백한 수태가능성이고 반면 여성의 경우는 남성의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위치와 보유 자원의 유무다. 말하자면 그러한 것들이 이성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


관련하여 일전에 내가 "(페북 프로필 사진에 보이는) 여자의 예쁜 외모는 (남자에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가 뭔가 (글로써) 몰매를 맞았던 기억이 날 듯도 하고, 안 날 듯도 하다. ㅋㅋㅋ

SNS에서 나름 (자칭) 합리적이고 심오한 정치-사회적 담론을 즐긴다는 아재들이 또 페북에서 예쁜 여자만 봤다 하면 뭔 말을 해도 댓글에 꽃사진이나 던진다거나 그 여성이 뭔 헛소리를 지껄여도 아무 반론도 없이 아부나 떨고 찬양만 해대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나 인간 수컷 은 奀(망)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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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주소: http://pandasthumb.org/archives/2016/05/a-devastating-c.html


유럽의 은퇴한 식물유전학자 Wolf-Ekkehard Lönnig가 진화론 현대종합의 근간이 되는 집단유전학이 품고 있는 핵심적인 약점을 짚었다. 그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If only a few out of millions and even billions of individuals are to survive and reproduce, then there is some difficulty believing that it should really be the fittest who would do so."

"생식 과정에서 만드는 수백만~수십억 마리의 자식들 중 극히 일부만 살아남게 된다면, 그게 정말로 '적합'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고 90년 전에 이미 다 해결된 이야기를 마치 지금도 문제가 되는 것인양 낚시 말했다고 한다.


관련하여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J.B.S. Holdane, Ronald Fisher, Sewall Wright가 '제한적 개체 수의 유전자 부동'에 관한 표준 모델을 발표하였다.


가령, N 마리의 부모가 각각 많은 수의 자손을 각각 같은 수만큼 낳는다고 가정하자.


  1. 그 수가 무제한으로 여겨질 만큼 많을 경우에는 각각의 부모는 동일하게 유전적 영향을 내려주게 된다. 그 자손들은 무작위적으로 상호 조합을 이루어 모든 가능한 유전형을 예상되는 빈도만큼 보여주게 된다.
  2. "자연 선택"이 일어날 경우, 그 유전형의 발현 빈도는 정확하게 예측대로 (생존 또는 번식에 유리한 표현형을 내는 유전형의 빈도수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게 된다.
  3. 과밀집된 인구밀도에 의한 절멸이 발생하게 되고, (부모와 같은 수의) N 마리의 자손들만 생존하게 되어, 이로써 전체 집단의 개체 수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결국 이는 모든 유전형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N 마리의 부모로부터 수많은 자손들이 태어났으나 그 중 N 마리만 살아남아 성체가 되었을 경우, 즉 자연 선택의 환경압의 영향 하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을 N 만큼 무작위 추출했을 때의 유전형 빈도수와 같다. 이러한 생존 자손들로부터의 무작위적 샘플링은 유전자 부동을 유발한다.
  4. 예를 들어 N=10,000 이라고 할 때, A와 a라는 두 유전자쌍이 동일한 빈도로 동일한 숫자의 자손을 낳는데 A의 생존률이 1% 높을 경우, A 유전형의 빈도수는 1/(1+0.99)=0.50251256... 정도 될 것이다. Lönnig가 걱정할 많큼 많은 수의 자손들이 죽어버릴 테니, 그 자손의 수는 N=10,000 마리 만큼만 남게 될 것이다. 
  5. 간단하게 이항분포로 계산해 보면, [http://goo.gl/1YvlQx] 한 세대 동안 A의 빈도수가 a보다 높게 나올 확률은 대략 0.681725가 된다. 
  6. 각 유전자쌍이 동일한 빈도와 동일한 적합도를 갖고 있으면서 세대를 더해 갔을 때 a가 소멸하고 A가 전체를 차지할 확률은, P.A.P. Moran (1958)Motoo Kimura (1962)가 계산해 놓은게 있으니깐 참조해 보면 된다. 결론적으로, 그 확률은 0.99999 (이렇게 9가 43개 이어진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유전학자"라면서 왜 "집단유전학"에 이렇게도 무지한 걸까? 왜냐면 Lönnig은 독일의 Max Planck 연구소 재직 당시 연구실 홈페이지에 창조론 관련 자료를 올려서 물의를 일으켰던 창조론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독일의 “Wort und Wissen”이라는 창좀 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분은 "husk tomato" 등의 식물에 대한 유전자 돌연변이의 영향이 주요 전공이라고 한다.


원문 포스팅에서는, 집단유전학의 "자연 선택"으로 인한 유전자풀 shift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뢰닉 박사님께 카지노에 한 번 가보시라고 제안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무작위적이지만 아~주 살~짝만 카지노 하우스에 유리하게 설정돼 있는 게임들을 하다 보면 주머니에 돈이 어쩜 그렇게 싹 다 없어지는지 알고서 깜~짝 놀랄 거라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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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주제는 시대를 초월해서 핫한 주제인듯 하다.

이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다양한데, "낙태"를 예로 들면, 극단적으로 가자면 "수정 직후부터 영혼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여겨야 하며 낙태는 살인이다" 에서부터 "태아는 독립적 생존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모체에 기생하는 모체 기관 조직의 일부 또는 모체를 이용하여 자기증식하는 기생체일 뿐(‪‎fetal parasitism‬)이므로 낙태할 권리는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 까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로마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며, 후자의 경우는 여성인권운동의 발로에서 소위 '모성'에 대한 사회적 강요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 억압이라는 주장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이것은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들어 배포중인 이미지 카드 중 한 장이다. 소위 페미니즘 진영에서 자주 제기하는 주장 중 하나인데, 어떤 맥락에서 나온 주장인지 그 취지는 이해하나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주된 맥락은 모든 여성들에게 모성을 강요하고 여성에게만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이를 자의로 중단했을 경우에 찾아오게 되는 죄책감 및 사회의 비난에 대항하는 논거로써 사용할 수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많이 내세우는 것이 1950년대에 의료계에서 주장하던 fetal parasitism, 즉 태아는 모체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기생체이기 때문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모체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논리다. 그로써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게 됐을 경우 낙태시술로써 임신과정을 중단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약간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생명윤리학자 임종식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가 (당시 서울대 철학과 강사/가톨릭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상임연구원) 철학자 Michael Tooley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을 브릭(BRIC)에서 발행한 웹진에서 찾을 수 있었다.(pdf 링크)

콜로라도 주립대학 철학과의 Michael Tooley 교수는 "the moral symmetry principle(도덕적 동등성 원리)"로써 "the potentiality principle(잠재성 원리)"에 반박하고 있다. 짧게 말해서 Tooley의 주장은 "태아는 생존권을 지닌 존재"라는 명제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과과정 또는 관계를 새로이 만들지 않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잘못된 행위로 볼 수 없을 경우, 그러한 과정이나 관계를 차단시키는 것 또한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도덕적 동등성 논리"로 요약된다. 즉 (인과를 만들지 않는 행위인) 피임이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면 (인과를 차단하는 행위인) 낙태 역시 그렇게 심각한 잘못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그 근거로써 한 쪽이 살려면 다른 한 쪽이 죽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예로 들어 인간의 생명을 동등하다고 볼 경우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다른 쪽을 선택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동등성"은, 그 행위의 "동기"를 인지함으로써 반박될 수 있다. 즉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살리지 않는 것"과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써 죽이는 것" 사이에는 도덕적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필자의 말을 빌면. "어떤 행위가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했는지 그리고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한 것이 상대방의 죽음에 원인으로서 기여했는지가 그 행위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즉 자연적인 흐름을 시작하지 않는 피임과 그 자연적인 흐름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낙태 사이에는 도덕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태아’는 당연히 ‘인간’에 해당한다고 본다. 배추벌레나 배추흰나비나 배추흰나비 알이나 모두 배추흰나비라는 동일한 하나의 ‘종’으로 보는데 왜 유독 ‘인간’만 ‘태아는 사람이 아니다’ 또는 ‘생명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건 ‘죄책감’의 문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살인은 나쁘다’고 배운다. 물론 ‘대의’를 위한 ‘숭고한’ 살인 또한 존재하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한 살인은 무조건 나쁘다고 배우는 것이 사실이다.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할 경우 낙태를 한 사람은 그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타인들의 ‘도덕적’ 비난 또한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서 자유로우려면 그 ‘(모든) 살인은 나쁘다’는 개념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태아는 (아직) 인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 크게 두 가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 않나 싶다. 페미니즘의 경우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후자를 택하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취지’는 이해하나 ‘동의’는 못하겠다고 할수밖에 없다.


"태아는 사람인가" 여부에 대한 입장은 첨예하고 복잡한 윤리적-철학적 이슈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사실 이 주제에서는 어느 한 쪽을 무조건 옳다-그르다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많으며, 실제로 그 어떤 주장도 반대되는 주장에 확고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쉽게 가는 법이 있긴 하다. 극단적으로 가면 된다. 수정 또는 착상 직후의 태아를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고 그에 대한 기본권을 모두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태아는 그 자체로써 '인간'이라 할 수 없으며 단지 모체라는 '숙주'에 연결되어 영양분을 먹고 증식-분화하는 '기생체' 또는 '암세포와 비슷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삶이 언제나 그렇게 극단적으로만 흐르던가? 그렇게 되면 결국 "관점의 차이"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기 마련이다. 무릇 "윤리"나 "철학"의 문제는 "과학" 또는 "사실"의 문제와 많이 다르다. 일단 그것부터 인정하고 나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듯 하다.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임종식교수가 BRIC 에 올린 글은 총 세 개로, 이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Citation: 임종식(2003). 태아는 어떤 존재인가?-잠재력논변을 중심으로. BioWave, 5(2): 2. Available from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review0&id=493 (Mar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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